소림사
어제 무술관련 큰 행사가 있었다고 오늘도 입구에서부터 이런 모습이 많이 보였다.
소림사는 숭산 밑에 있는데 숭산에 오르려면 입장권을 구입하고 소림사를 지나가야 한다.
숭산 산행은 능선까지 걸어서 오르거나 아니면 케이블카를 타고 능선까지 오른 후 산행을 한다.
소림사 부근에는 엄청나게 많은 무술학교가 있다고 한다.
원래 달마대사가 소림사에 와서 뒷산 토굴에서 9년간 면벽수도를 하고 몸을 회복하기 위해 무예를 한데서부터 소림 무술이 시작되었다는데, 지금은 그 의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상업적인 무술학교의 난립과 쇼를 위한 무술의 느낌을 보여준다. 소림사 바로 옆에 하루에 여러 차례 보여주는 무술 쇼장이 있다
길을 걷다가 본 인민복 복장의 사람.
사진이 뚜렷하지 않아서 아쉽지만 얼굴과 머리 스타일도 모택동과 아주 흡사한 사람이었다
소림사 정문
대웅보전
소림사 뒷산. 오유봉.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이다
달마대사가 면벽수도한 동굴이 저 산(少室山 五乳峰) 중턱에 있다고 한다. 다음에는 반드시 찾아 봐야겠다.
達磨. 인도에서 건너와 육조시대 북위때 소림사 뒷산 동굴에서 9년간 면벽수도후 깨달음을 얻은 禪宗 불교의 창시자.
이전의 경전 중심의 敎宗과 달리 사람의 마음은 본디 청정하여 깨달음을 통해 득도할 수 있다는 선종 불교를 중국에 수립한 선종 初祖.
제자 二祖 慧可에게 전수된 선법은 7세기 당나라에서 선종으로 꽃 피웠다. 후에 뛰어난 선승들이 배출되서 한국,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쳐 오늘날 한국 불교에서는 선종이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저 산과 마주한 산 봉우리 꼭대기에 2대조 혜가스님과 제자들 동상이 있는 二祖庵이 있다. 그곳으로도 케이블카가 쉼없이 오르내린다.
혜가스님과 관련한 일화가 있는데, 혜가스님은 달마스님에게 제자로 받아 달라고 눈이 몸에 덮이도록 밤새 무릎 꿇고 간청했지만, 달마스님이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지 않으면 받지 않겠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한쪽 팔을 칼로 베어 붉은 피로 물들였고 달마스님이 장삼으로 팔을 감싸서 장삼이 붉게 물들여져서 제자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慧可斷臂라는 일화가 있다.
그래서 그후부터 소림사의 스님들은 한손으로 절을 하고 붉은 장삼을 입게 되었다고 한다
물품을 파는 상점. 가운데 서있는 사람은 스님이다
소림사는 이미 수도 공간이라는 느낌이 사라지고 세계적인 유명 관광지일 뿐인 듯 하다.
몇년전에 새로운 주지스님을 모셔왔는데 미국에서 MBA과정을 마친 사람으로 이미 기업화된 소림사의 여러 분야 사업의 더 커다란 영업적 발전을 목표로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이런 것이 전혀 아닐진데, 달마의 정신을 기리거나 禪宗 佛敎의 요람을 기리거나 발전시키고자 하는 어떤 노력이나 글귀 하나 없다.
소림사에는 오늘날 중국의 모습처럼 중생 구제의 의지도 안보이고, 불교도 돈이고, 달마도 돈이다.
탑림
고승들의 사리탑이다
중악 숭산
숭산과 이 산 주변 일대를 일컬어 天地之中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 천지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낙양을 중원이라고 부르고 있어 낙양 근처에 있는 산이라 그렇게 칭하는 것 같다. 탑림과 숭양서원등 주변의 여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능선까지 걸어서 오르거나 케이블카를 통해 오를 수 있다. 충분한 체력과 산행시간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숭산은 바위가 위 아래로 특이한 모양을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위아래로 퇴적되는데, 저 암층은 특이하게도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다. 안내판에 선캄브리아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써 있다.
그러면 지금 나는 고생대보다 더 전인 5억 7천만년전 이전의 지질시대를 거닐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저 공중 잔도의 길이는 3km나 된다
중국의 산마다 만나는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사람.
황산이나 삼청산 같은 일부 명산에는 구경꾼을 태우고 오르내리는 가마꾼들도 있다.
이것이 뭔 위대한 사회주의인가. 지니계수도 최악의 극단적인 빈부격차. 가장 추악하고 병폐스런 자본주의의 모습이 적나라 하다
三皇寨와 三皇行宮. 도교 사원이다.
중국의 산과 유명 관광지에는 도교사원만이 아니라, 영웅과 잡신을 숭배하면서 부를 바라는 온갖 형태의 사원이 많은데 기복신앙이 강하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돈만 숭배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부패한 자본주의의 방향성 없는 정신적 방황의 징표이다.
그리고 중국 불교의 쇠퇴는 유학을 중시하는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나타났지만, 근래에는 사회주의와 문화대혁명이 또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철학에는 서양과 달리 인식론이 안보인다. 오직 세계와 우주의 근본을 묻는 형이상학만이 있다. 이러한 동서양의 사고 차이가 근대이후 치밀한 연구를 통한 자연과학 또는 기술발전의 차이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밤에 도착한 안양. 호텔 건너 밤 시간 시장의 풍경.
안쪽으로 들어가니 음식점, 술집들에 꽤 손님들이 있었다.
안양. 殷虛의 도시라는 점에서 감격스러웠던 도시.
동양 문명의 최초 역사시대 유적지와 갑골문자가 발견된 도시..
BC 1500년 이전이니 지금으로부터 3500년이상된 현재까지의 발견으로는 역사시대이래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문명 도시.
몇잔의 술과 함께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중국 땅의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면, 돈밖에 모르는 오늘날 중국인들은 역사와 정치에 절대 다수가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부만을 쫓는다.
지금은 경제 발전이 시급한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국가가 지배적인 위치에 서는 것에 열광하고.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앞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인권 유린과 정치적 통제, 세계 최악의 빈부 격차로의 귀결.
그러나 중국인들 특유의 사고..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커서는 친구에게 의존한다는 의리를 강조하는 한족 특유의 꽌시. 맹목적 민족 단결과 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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