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항산맥. 남태항
태항산맥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1920-30년대에 국민당군은 공산당 몰아내기에 전념하고 있었고, 공산당은 일제와 국민당 양쪽과의 싸움에 매달리다가 결국 국민당군에 밀려 1934년~1935년 정강산에서부터 옌안으로 탈주하는 1년동안 대략 1만키로의 대장정(실은 대도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36년 장학량 군벌의 장개석 억류와 국공합작 강요, 그리고 공산당 역시 코민테른으로부터의 국민당과의 연합 투쟁 지침등으로 결국 37년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면서 공산당은 일제와의 싸움에 전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1941년 하북과 산서성의 경계이자 중국 공산당 보루인 섬서성 옌안의 성채인 태항산맥에서 공산당과 일제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남북 600키로 동서 250키로로 남한보다 큰 거대하면서 높고 험준한 태항산맥에서의 싸움은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야기한 애국적인 대 투쟁이었다.
특이할 점은 이 전투에 등소평을 비롯한 중국 인민들외에,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대규모로 참여해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점이다.
즉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이 발전하면서 조선의용대로 변화되었는데, 이중 일부를 계승한 중국 팔로군 포병대장 출신의 유명한 무정장군의 조선의용군에 대규모의 조선 젊은이들이 태항산으로 자발적으로 모여 들면서 일제와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후의 분대장이자 열정적으로 살다간 <격정시대>의 문학가 김학철이 일제와 싸우다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잡혀서 해방때까지 나가사끼 형무소에서 수감된 전투도 바로 이곳에서의 일이다.
그밖에 전한이후 신나라를 잠시 건국했던 왕망과 후한의 훗날 광무제가 된 유수와의 싸움이 이 산에서 있었고, 한단지몽(邯鄲之夢)등의 고사성어가 있는 하북성 한단과 石家莊이 이 산의 동쪽이고, 서쪽은 太原과 오악 중 북악인 항산이 있고, 북쪽은 소오대산, 여기 남쪽은 태항산맥의 끝자락 운대산이 있고 林州가 있다.
태항산맥 남쪽, 소위 남태항산 풍경.
이 웅대한 산맥은 하북과 산서, 하남성에 걸쳐 있고, 이 산맥을 경계로 3성이 나뉜다.
한국 관공객들은 주로 남태항을 가는데, 동태항과 북태항, 서태항의 일부를 가는 각각의 트레킹도 있다. 북태항은 내몽고로 이어진다.
경치는 웅장함이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말 그대로이고, 특징적인 점은 그랜드캐년이나 시드니 블루마운틴과 달리 트레킹 접근이 용이해서 본인의 의사에따라 걷거나 산행하는 시간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겠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게는 우리의 역사와 관련성 있는 이 곳이 서양의 산보다 더 정감이 들었고, 이런 거대한 스케일의 웅장한 경치의 산맥이 우리 나라에는 없어서 마냥 부러울뿐이다.
훗날 남태항이 아니라 조선 젊은이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석가장 부근의 동태항쪽도 가보고 싶다.
태항산은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다.
전에 이 경치외에 남태항산의 다양한 풍광을 봤다.
그리고 약 15개의 중국 유명 산을 보고나니 산들의 형세나 특징들이 구분된다.
물론 산악지역으로 유명한 귀주성은 아직 가보지 못했고, 내가 몇번 가본 사천성과 운남성 경치도 극히 일부분이고, 사천성과 운남성의 못가본 깊숙한 오지에는 또 다른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중국 산의 모습은 정말 다양하고 웅장, 기묘하다
한 중국인 남자가 투명 유리잔도 위에 코트를 걸치고 서있다.
중국의 산을 가면 등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상복에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바윗길에서는 운동화가 미끄럼 방지 기능이 없어 위험하다. 숭산에서는 양복에 남방셔츠와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옆 모습을 봐서 넥타이를 맷는지는 모르겠는데 매어 있는 가방과 더불어 출퇴근 모습이었다.
일본도 등산인들은 그렇지 않은데, 후지산에서도 평상복에 운동화가 대부분이었다.
높은 산에서는 기후 변화가 심해 비를 만나도 기능성 등산복이 좋은데, 우리 나라 사람들만 요란을 떠는 것인가..
그런데 한, 중, 일 중에서는 우리가 취미로서의 등산 인구도 많고 등산 문화가 가장 발달한 것 같다.
중국인들은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는 곳 주변만 주로 가고, 태산에서도 칼바위 능선을 가는 사람들은 주로 한국인들이었고 도중에 만나는 중국인 등산객은 극소수였다. 그래서 그 능선을 코리안 로드(한국 길)라고 명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폭도 상당히 넓고 깊이도 사진보다 2배이상 깊은 계곡 사이에 전에 없던 짚라인이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자주 중간에 멈춰서 줄을 타고 데리러 가고 있었다
'여행과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오름 풍광 (0) | 2018.11.30 |
---|---|
중국 중원의 산과 사람들 -5. 하남성 박물관 / 정주 (0) | 2018.11.17 |
중국 중원의 산과 사람들 -3. 오악 숭산, 소림사 / 안양 (0) | 2018.11.04 |
중국 중원의 산과 사람들 -2. 오악 화산 / 낙양 (0) | 2018.11.03 |
중국 중원의 산과 사람들 -1. 운대산과 홍석협 / 정주, 낙양 (0) | 2018.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