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여행.
10월 초에 북한을 짧지만 5일간 갔다 왔는데,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남포, 황해도 일대를 보았다. 어떤 사람은 갔다 오고 나서 꿈을 꾸었던 것 같다고도 표현하던데, 나는 그런 느낌뿐만 아니라 한마디로 충격과 감동이었다.
충격은 인천에서 고려항공으로 50분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갈 수 있는 너무도 짧은 거리였다는 점이 48년이라는 분단의 시간과 대비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순안공항의 낡고 조그만 건물 모습과 공항을 벗어나면서 보이기 시작한 아파트들의 꽤죄죄한 모습들에서 충격적이었다. 예상했던 거리의 현란한 붉은 구호와 남쪽의 70년대초 정도의 발전 모습들에서 또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시내는 거대한 대리석 건물들 위주이고 커다란 동상들.,
우리 일행들은 예상과 달리 꽤 자유롭게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고, 북쪽의 많은 사람들과 정치적인 주제와 특히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매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는 북쪽 체제가 이제는 많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자신감과 그리고 자신들의 처지를 그냥 드러내고 발전을 모색하겠다는 의미 같았는데, 실제로 그쪽 사람들은 자신들의 어렸웠던 몇년전과 지금 상황을 인정하고 이야기 하드군.
고속도로는 개성-평양간과 평양-묘향산, 그리고 평양-남포간 밖에 없고, 평양에서 원산이나 금강산까지는 잘 모르겠고... 평양-신의주간도 잘 모르겠고,
평양은 전기 사정으로 밤에는 꽤 어둡고, 항공기의 국제선도 북경, 심양. 블라디보스톡? 정도인 것 같고, 순안공항의 하루 일정표를 보니 그 두곳과 백두산 삼지연 공항 정도 취항하는 것 같고,,,
평양시내에도 차가 별로 없고, 전차와 짧은 거리의 지하철, 버스등이 주요 교통수단이고,
지방에서는 트럭에 사람들을 위태로울 정도로 가득 싣고 다니드군.
평양은 250만에서 300만 정도의 인구인데, 도시가 작고 나무가 많고 대동강 말고도 보통강, 순화강, 상원강, 동곤양강등 강이 많고 강이 시내를 관통해 휘돌아 감기도 해서 아주 아름답고 공기가 매우 깨끗하드군.
주택들은 주로 아파트인데 예상과 달리 가구 구성원 숫자에 맞춰서 우리의 20평대중반, 30평대 중반,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집도 배정하는 것 같고, 물론 페인트등의 물자가 부족한 지 색칠은 전혀 안되어서 누추해 보이고...
북은 약이나 소비재 물품들이 꽤 부족한 것 같고,,. 아직도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보이면서 발전이 꽤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는 듯... 70년대초반까지 남쪽보다 더 발전 했었는데, 아마 길게는 80년대 이후 짧게는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정체가 심한 듯 싶고,,,
북쪽의 사람들은 인상이 대체로 솔직하고 아주 순수하드군. 자신들의 현재의 처지를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의 체제에 대해서는 아주 자신감과 현 시대의 국가의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에 투철한 것 같고,,, 국가와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의식이 뚜렷하고, 청소년들도 군대와 대학이라는 선택에서도 공히 둘 다 중요하다는 식이고...
특히 여자들...너무 아름답고,,,미모도 그렇지만 마음이 아주 순박하고 예의 바르고, 그리고 남자에게 의지하고 모시고 잘 따르며 살아야 한다는 의식은 남한과 확연히 구별되드군. 통일되면 남쪽 젊은 남자들은 마구 북으로 가겠드군. 약간의 수줍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밝히기도 하고. 남쪽에서는 년하의 남자들하고 사귀는 것도 하나의 풍조라고 하니까, 그들 왈, '이해 못하겠슴다. 자신보다 나이 위이면서 생각이 바른 남자하고 결혼해서 잘 모시면서 살아야지 그게 뭡네까'
그리고 북의 결혼은 거의 연애 결혼이고,,,
학제는 초등학교 4년, 중학 6년, 그리고 대학이어서 중학이 우리 식으로는 중.고가 같이 있는 꼴인데, 17세면 대학이나 군 또는 사회생활이 시작되는데, 중학생들도 오전 수업만 하거나 오후에 1교시만 더 수업하고는 오후에는 본인이 원하는 예체능 교육을 집과 가까운 많은 시설들에서 배우고 즐기는 것 같고, 단 중학 6학년때 가면 대학 갈려는 학생들은 그동안의 내신성적도 반영하지만 또 시험이 있어서 그들말로 바쁘다고,,,공부 때문에.
하지만 애들이 자유롭게 춤과 노래, 컴퓨터 ,체육, 그밖의 재능들을 익힌다는 점이 우리와 확연히 구분되고.
그리고 술은 독해서 주로 소주가 30도 이상 50도 정도까지 되드군.
호텔 바에서 매일 술 마셨는데, 맥주에 45도짜리 섞어 먹고는 어느 날 하루는 오전 평양 시내 관광을 못했으니...
북의 지식인이나 관료들의 남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호의적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인들은 아예 거의 환영적 수준...
지나는 길에 마주 치면 우리 통일 하자는 이야기와 먼저 반갑다고 열렬히 손 흔들고 악수하고 놀라워 하고... 그리고 시골 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정말 마음으로 우러나서 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북은 2000년 DJ의 방문 이후 즉 6. 15공동선언 이후 과거의 남한에 대한 냉랭함이 사라지고 아주 환영적. 일반인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사람들의 얼굴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해졌다고...
충격 말고도 감동을 많이 느꼈는데, 일반 시민들의 순박함과 특히 같은 민족에 대한 따뜻한 눈길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가슴 깊이 새겨져서 우러나오는 듯한 모습에서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남쪽을 그래도 꽤 여러 차례 다닌 고려항공 여승무원이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항공기가 활주로를 지나 청사 가까이에 접근하는 중에 다시 만나요라는 노래를 선창하고, 우리가 어물어물 따라 부르는 도중에 그녀가 목이 매여서 끝내 눈물을 뿌리는데, 우리 모두 숙연...
지난 달에 우리 통일원장관이 북은 상징적 변화의 단계를 지나 이제는 의미있는 변화의 단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물론 마지막 3단계인 더 이상 돌아 갈 수 없는 본질적 변화의 단계가 남아 있지만...
정말 북쪽 사회는 변화가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 크지 않은 평양 시내를 , 그것도 차도 별로 없는 평양 시내를 남쪽 사람들이 최근에는 200명, 300명, 1000명까지 계속 들어가서는 그들 사회에서는 드문 버스 행렬인 10대의 차량, 최고 40대 차량이 시내를 관통하면서 휘젓고 다니고 있으니... 대혁명인 셈이지.
이제 북은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줄 상대가 다른 외국이 아니라 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은 듯 싶다.
변방의 나진 선봉에 외자유치도 완벽할 정도로 실패했고, 신의주 자유구역도 시작도 하기 전에 중국의 방해로 실패하고, 96년부터 2000년 물론 작게는 96년부터 98년까지의 경제적 파탄(고난의 행군시대) 극복의 과제를 남한과의 협력으로 돌파하는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새로이 뚜렷해진 듯 싶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인센티브제도 등까지 도입한 2001년 7월 1일의 경제개선조치도 그 일환에서 시작되었지만 획기적인 발전의 모티브를 남에서 찾을 수 밖에 없을 듯 한데, 남한 역시 만일 개성자유공단이 정치적인 외적 요인에도 큰 변화없이 보장되고 활성화된다면 섬유를 비롯한 많은 경쟁력 상실 산업들이 값싼 노동력과 높은 손재주, 값싼 물류비용등으로 중국이나 다른 국가와의 경쟁력 회복에 일대 전기가 되어 상호 이익이 될 것이고...
지금 북은 95년경 구체적으로는 2000년부터 선군정치시대로 돌입했는데, 이 구호는 오늘날 북의 고민을 대변해준다.
즉 군이 지도적 위치에서 이끄는 사회라는 뜻인데, 이는 북한은 미국에 대한 불안이 일차적인 고민이라는 것이다. 자기들 체제를 보위하는데서의 불안감을 반영하는데, 우리는 북의 핵위협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들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침공 그것도 단 시간에 박살내버리는 (실질적인 박살 여부는 논외로 치고) 가공할 군사력과 기동력에 체제보존의 위협을 심히 느끼고 그래서 핵으로 자신을 지키고 위협하겠다는 발상인데, 한반도의 통일은 어느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흡수통일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의 군사분계선 부근에 배치한 무수한 장사정대포와 미사일은 서울 하늘에 우수수 떨어 질 것이고 그 결과 엄청난 파괴와 사상자가 예상된다는데, 어떤 전문가들은 심지어 1000만명의 사상자까지 예상한다는 점과 지금까지의 경제발전이 파괴된다는 점, 산업시설과 도로 항만 공항등의 마비등...그리고 다시 오랜 전후회복의 기간과 천문학적인 비용,
그래서 DJ의 포용정책 또는 햇빛정책이 올바른 것이고, 독일의 대규모 지원의 예에서 보듯 북에 대한 은밀한 지원도 통일 비용이고 평화정착 비용인 것이다. 미리 북한 사회가 많이 발전해야 통일이후의 비용이 줄어 들 것이고,....
북쪽 사람들 왈, '90년대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식량배급도 현저히 줄어서..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고 이제는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 말은 남쪽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말인데, 일부 우익의 우려처럼 군사비로의 전용보다 실질적인 그들의 생활과 경제 발전에 도움이 큰 듯하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 할 필요가 없을 듯 싶고,,,,단 정치경제적 강국의 기본 요건 중에는 많은 인구와 넓은 국토, 자원(우리 광업공사는 2008년에 3700조이상 금액으로 북한의 세계적인 자원 매장량 예측 계산, 즉 북한 인구 3천만 인구에게 1인당 1억이상씩 배분될 정도의 액수, 그리고 그 이상의 매장량 예측도 있고)등을 지적하는데, 여러 장점과 장차 국내 시장의 대규모 확장으로도 연결되고,,,
물론 통일 비용이 한동안 발목을 잡겠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분명 장점이 많으니...
끝으로, 저공비행이어서 개마고원을 하늘에서 봤는데, 가을철 거대한 단풍 숲과 끝없이 넓게 펼쳐진 고원의 경치는 남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주 이색적이며 멋진 경치였고, 통일되면 지프차 타고 달려가보고 싶고 고원을 걸어보고 싶을 정도의 이색적인 경치.
그리고 백두산 경치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드군.
특히 가을이라서 백두산 바로 밑의 삼지연 공항의 넓은 자작나무 숲과 깨끗한 공기. 삼지연 일대의 드넓은 이깔나무숲은 마침 가을이라 끝없는 노랑 물결의 바다여서 특히 장관이었다. 아울러 중국쪽 백두산코스는 알다시피 장백폭포까지 나무숲으로 좌우를 가려서 경치가 보이지 않고 단조로운데, 북쪽의 백두산코스는 마그마가 분출되고 흐르다가 바로 굳어버린 거대한 마그마 덩어리가 또한 장관이어서 중국코스와는 비교 안될 정도의 경치였다.
언제 기회되면 반드시 구경 갈 것을 권한다.
더욱이 눈보라 속에서 장군봉에 도착하니 두줄로 도열해서 박수로 맞이해준 우리처럼 똑같이 구경 온 김책공대생들의 열렬한 환영도 정말 감격적이었다. 평양호텔에 처음 도착했을 때 호텔앞에 나와서 해맑고 신기한 표정으로 일렬로 서서 열렬히 박수치며 반겨주었던 호텔 종사자들의 얼굴들처럼 분단되어 있지만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감격을 백두산 정상에서 양쪽 사람들 모두에게 뜨겁게 불러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백두산 항일유격대 밀영지에서의 순수한 모습의 대학생 얼굴들도 다시 떠오른다.
두서 없이 적어 봤다. 우리 친구들이 북쪽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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