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맥닐 교수와 깐수(정수일)박사에 의하면 승마술과 유목의 기술은 초원과 알타이 협곡을 통해 서서히 동쪽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주장한다(내가 전에 본 윌리엄 맥닐의 저서 4권은 다른 세계사 책들과 달리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타 지역들과 균등하게 중시해서 서술했고, 깐수는 동서 문화교류의 유명 학자인데 분단국가의 특이한 인생 이력을 갖은 분이며 답사기 형태의 책들이 있다)
유라시아 스텝지대에서 동쪽으로 향한다는 것은 훌륭한 목초지가 아닌 질이 떨어지는 곳으로의 이동을 의미했고,
몽골쪽은 강수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떨어져서 환경이 대단히 가혹하고 사람이나 동물이 살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알타이산맥을 통해 양쪽의 문화교류와 교역은 진행되었다.
그리고 기마전술이 확산되자 BC 7세기의 스키타이인처럼 공격에 성공하면 막대한 이익을 누려서 변경지역에서의 전쟁과 약탈공격이 다반사가 되고, 습격을 받은 쪽은 황폐화, 심지어 부족이 이동을 해야 했다.
아마 BC 700년 직후쯤 스키타이족의 일부는 정치적 격변 후 질 좋은 초지와 온난한 기후가 유혹하는 서쪽, 즉 남부 러시아로 이주한 후에 우크라이나 스텝지대에 부족국가를 건설했다.






그후 이 지역은 BC 6세기부터는 사카족과 같은 페르시아계 부족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스키타이족을 중앙아시아에서 몰아낸 투르크계 부족도 자신들을 압박하는 몽골계의 여러 민족들 때문에 뒤이어 스키타이인처럼 서쪽으로 향했다.


월량만


와룡만

스텝지대의 여러 민족간의 대 변동은 중국의 진의 통일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중국의 한족은 자신들외의 주변 민족, 부족을 모두 미개한 오랑캐로 간주했다.
동이, 서융, 남만, 북적으로 불렀고 우리 민족도 동쪽 오랑캐로 여겼다.
시황제는 통일직후 공격적으로 여러 부족을 내몽골에서 쫓아냈는데, 그들은 외몽골의 인적없는 스텝지대로 달아나 연합체를 형성하고 급속히 강성해졌고 훗날 한 왕조와 겨룰만한 세력이 되었다.
그후 흉노는 스텝지대를 횡단하여 서방과 그리고 오늘날 카자흐지역에 지배력을 확장하기 시작해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을 그들의 거주지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남쪽의 월지를 내쫓아 월지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북부지역에 박트리아를 건설하고 후에 쿠샨왕조로 변화해 인도의 큰 역사적 변천을 야기한다.

알타이에서 돌아가는 길.
조그만 돌로 쌓은 오보들


석유 시추


사막속의 스텝, 하천

사막에 거대한 태양광.
풍력과 가스, 석유 시추가 활발하다

안집해 대협곡. 불쑥 땅이 꺼져서 형성되어 있고, 광물 성분 때문인지 색깔도 다양하다






가운데 노란 것과 메론 비슷한 두가지가 하미과이다.
보통 이것보다 더 큰데 투르판 밑의 하미지역의 특산 과일이다.
오래전 투르판 부근에서 사막의 열풍을 경험해보고 동서 교역의 핵심 코스인 천산남로의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의 혹독한 환경은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그곳을 '죽음의 바다'라 칭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열풍 경험을 하고나서 먹은 과일이 하미과인데 매우 맛있어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강희제가 이 과일을 처음 먹은 후 이렇게 맛있는 과일의 이름이 뭔가라고 물어서 그 이후 사람들이 하미과를 황제의 과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후에 하남성에서 보이길래 구입했더니 당도가 전혀 달랐다.
이 스텝지대 유목민들간의 공격으로 목초지에서 추방되면 그 부족은 사멸, 거치른 지역으로의 이동, 또는 인근 부족의 목초지를 재빠르게 빼앗는 반복적 과정이 나타났다.
서기 350년 직후 외몽골에서 출현한 유연이 만주에서 카자흐까지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면서 스텝지대의 서쪽으로 나아가자 다른 민족과 부족은 흩어지며 도주했는데, 그 중 하나가 서양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훈족이다.
훈족은 서기 372년에 남부 러시아에 등장해 동고트족, 서고트족등의 게르만족의 민족 이동과 로마제국의 멸망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후에 유연은 지배받던 돌궐과 중국측의 연합 전선에 괴멸되었고,
이후 돌궐(투르크, 중국식 호칭은 돌궐, 오늘날 카자흐스탄인들은 투르크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긴다)은 스텝지대에 막강한 대 제국을 건설했으나 수나라의 이간질과 내부 승계문제로 오늘날 내외 몽골지역에 동 돌궐, 천산산맥 위의 오늘날 카자흐와 키르기스탄지역에 서 돌궐로 분열하여 대립했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가 알타이 깊은 협곡을 뚫고 개척된 동서교류의 통로 역할을 해온 알타이 초원로를 통해 몽골, 중국 서북지역으로 전파되었듯이 7, 8세기에는 이 길의 주변에 거주하는 카자흐인들에 의해 돌궐 (투르크)문화가 서전되었으며, 징기즈칸의 기마군단도 서정때 이 길에 발자국을 남겼다.

독산자 대협곡


사막은 모래사막, 자갈사막, 암석사막으로 구분되는데, 암석사막은 강한 바람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암석 가루가 깔린 사막이고, 고비는 자갈 및 암석사막이며 중국에서 두번째, 세계에서 다섯번째 큰 사막이다.
이 끝없는 사막 가운데서 이상한 모양으로 침식된 대협곡들이 나타난다


협곡 바닥에 포장된 도로를 길게 깔았다. 자연보호 구호만 요란하지 아예 개념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사막 가운데 조그만 농촌 마을이 드물게 보인다.
주변에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곳에서 사막이나 스텝을 개간해서 소규모 농사를 짓는 것 같다

천산대협곡
후에 당의 강력한 군주인 당 태종은 잠재적 위협 세력인 북쪽의 돌궐, 서로는 탕구트와 고창국을 정복하여 영향력이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 일대, 파키스탄까지 확장하였다. 이후 실크로드가 본격적으로 이용되고 동서 문화교류가 활발해졌다.
이 시기에 수도 장안에는 색목인이라 불리는 서역인들이 무수히 드나들고 서역풍 요리가 유행하고 비잔티움제국의 콘스탄티노플처럼 세계 최대 국제도시가 된다.
하지만 한나라때처럼 당 시기에도 당의 안서도호부 설치와 그리고 오아시스길 실크로드 즉 천산산맥 남로인 타클라마칸 사막과 타림분지 일대 아울러 천산산맥 북로인 카자흐, 키르기스탄, 우즈벡, 투르기스탄, 파미르고원의 타지기스탄, 토번(티벳지역)등의 무수한 작은 나라들에 대한 공격 및 점령이 이어졌다.
즉 이슬람권과의 치열한 전투는 윗쪽 초원의 길 지역과 아래쪽 오아시스 길 모두에서 심해서 이 일대는 피가 튀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안서도호부를 이끌고 싸우던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 부대는 계속적인 전투에 승리하다가 마침내 이슬람군대에 키르기스탄지역의 탈레스에서 패배하여 이 지역에서 쫓겨났고, 이 시기에 중국의 종이 제작법도 서쪽으로 전해졌다.



이후 초원의 길을 통해 몽골은 알타이를 넘어 러시아, 동유럽까지 3번의 서정으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으며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후 다시 북쪽지역에는 오이라트가 강성한 세력으로 자리잡았으나 명의 영락제가 대군을 이끌고 고비사막을 건너 5번 직접 출정한 싸움의 과정에서 몽골지역에서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 알타이 서쪽지대에 8세기에 새로 위구르가 등장한 후 840년에 멸망했다가 후에 다시 이 지역의 주요 부족으로 대두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알타이 일대는 그후 러시아의 남하 야욕이 유럽 타 제국주의 국가들의 견제속에 좌절되어 지금의 국경선으로 나눠졌다.
그래서 알타이 북쪽은 러시아, 카자흐, 키르기스탄,
알타이 동쪽은 몽골,
서남쪽 지역은 훗날 청의 건륭제의 공격과 장악으로 새로운 영역, 신강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후에 중국 공산당은 다시 국공내전때 팽덕회 군이 진입해서 장악했다

홍산공원 가는 길에 들른 청천선사.
전에 수많은 중국 사찰들을 봤는데 대부분 도교적 분위기와 조악한 화려함의 인상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 사찰은 이름에 '선' 글자가 들어가 있다는 점과 스님들 복장이 우리와 같아 놀랬다

대승불교와 선 불교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대표적 문구인 '응무소주' 글자가 적혀 있었다.
6조 혜능이 5조 홍인을 찾아간 이유가 '應無所住 而生其心 '이란 문장의 낭독을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고,
금강경의 문구는 '菩薩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이다.
남종선의 중심 지역이었던 남쪽 끝 광동성도 아닌 서북 끝의 오지이자, 위구르의 이슬람 문화지역인 신강에서 선 불교를 내세운 사찰을 보니 더욱 놀라웠다

끝으로 이번에 독산자공로로 쿠차를 못 간 점은 아쉬웠다.
위대한 쿠마라집의 고향이자 키질석굴.. 그리고 혜초스님이 돌아오는 길에 들렸고, 고선지 장군의 역사가 있는 곳, 실크로드 핵심지인데 군사기지 때문에 외국인은 못 지나가게 한다는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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