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성 긴 시간 여행의 피곤함이 남았는데 미리 티켓팅해둔 이유 때문에 어머니 제사만 드리고 다시 나섰다..
산서성의 북쪽 끝 대동(다퉁)은 길이 600키로의 태항산맥 윗 부분이며, 과거 한족이 멸시하는 오랑캐 북적의 땅이었다.
한 고조 유방은 흉노 정벌을 나섰다가 이 지역 대동에서 포위(백등산 전투)되어 7일 낮과밤을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겨우 살아났고, 이후 유방은 흉노와 화친정책을 취했다.
5호16국 시대에는 선비족 탁발씨가 위(또는 대위, 후에 역사학자들이 구분을 위해 북위로 명명)를 이 지역에서 건국 후 오랫동안의 중원의 분열과 대립을 정리하고 장강 위쪽의 땅을 통일한 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당시 대동의 이름은 팽성이었고 5세기경 인구는 세계 최대 수준인 100만명 정도였다.
그래서 이 지역은 북위 문화의 흔적인 운강석굴등이 남아 있고, 후에 북위는 수도를 낙양으로 이주하고 영토 확장과 한족과의 동화정책을 추구하였다.
그런데 북위는 동화정책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동위, 서위로 분열되었다가 북제, 북주시대를 거치고 수나라가 강남의 남조까지 병합해 전 중국이 다시 통일된다.
그리고 후에 이 지역은 내몽고를 근거지로 한 거란족의 요, 여진족의 금나라와도 관련이 있다.
<운강석굴>
북위는 자기 중심적인 한족이 오랑캐라고 멸시할 수준이 아니라, 뛰어난 문명 수준을 보여준다.
북위의 뛰어난 황제 효문제는 실질적인 최초의 토지제도인 균전제를 고안했다.
토지를 국가 소유로 하고 농민에게 나눠주어 일정 부분 세금을 걷음으로써, 심지어 떠도는 유민들까지 정착시키고 안정적인 국가 재정을 확보했고, 후에 이 제도는 수, 당으로 이어진다.
오래전 낙양에서 효문제를 그린 커다란 그림을 본 적이 있고, 역사 전공자는 아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효문제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중국은 통일제국이 이뤄지면 반드시 주변을 공격해서 못 살게 구는 패권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데, 효문제는 우리 고구려와 좋은 관계 심지어 장수왕 사망 소식에 눈물 흘렸고, 뛰어난 정책들의 고안과 도교가 국교임에도 훌륭한 불교 예술을 제작하는 문화적 다양성과 관용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북위는 중국의 3대 석불인 운강석굴외에도 돈황석굴, 낙양의 용문석굴 모두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운강석굴의 천장벽화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벽화보다 1000년전에 제작될 정도로 당시 북위는 뛰어난 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그리고 운강석굴의 현재 보존 상태는 도굴과 약탈당한 실크로드에서 봤던 돈황석굴보다 나았다.


























색채가 살아있다. 채색의 기원 및 전파와 관련된 중국과 서양학자들간의 오랜 논쟁, 즉 채도 논쟁이 떠오른다.
석회암이기 때문에 석굴을 만들기 쉬웠다. 하지만 석회암은 비나 물에 풍화가 쉽기 때문에 감실이 있는 석굴을 포함해 특별한 보호장치가 있으면 좋겠다..
<화엄사와 대동 고성>
화엄사는 요나라(거란족) 황실 사찰로 건축되었고 금나라때 중수되고 명대의 불상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대동의 고성은 북위때 건설되었다가 명나라때 그 자리에 다시 지었는데 이후 파괴되어 현재 보이는 고성은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새로 시가지에 옛날 풍의 건물들을 조성해 관광 붐을 일으키려 하는 것 같다

구룡벽






성 위의 무기들

<현공사>
다퉁시 남쪽 항산의 기슭에 있다.
절벽의 중간에 매달려 있는데 지면으로부터 50미터쯤 높이에 나무 기둥으로 받쳐 있다.
절벽 위의 폭이 좁고 삐거덕 거리는 나무 난간들을 고개 숙인 채 겨우 지나가는 아찔함을 느끼게 만든 이 건축물은 조그만 전각들이 연이어진 구조였다.
안전상 이유 때문에 출입 인원을 제한하여 아침 일찍 서둘러 도착했다.
북위때 건축되었고 이후 중수 보수되면서 나무 건축물이 1500년을 절벽에서 유지되어 오고있다니 놀랍다.
처음에는 도교사원이었다가 불교, 유교의 노자, 석가, 공자 3교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통로가 아찔해 정신 없어서 함께 모신 상을 보지 못 했다.












위에 장관이라는 글자는 이 곳을 구경한 이백이 쓴 글자이다.
당나라때 이백은 강남지역 그후 산동, 절강, 화북등지와 중원을 거쳐 이 지역 산서와 마지막에는 안휘성에서 사망때까지 세상에 뜻을 펼치지 못하고 돌아다녔다.

이 암석에 쓴 글자는 서하객이 쓴 것이다.
서하객은 강서성 출신 명말의 지리학자인데 중국의 많은 곳을 탐사하다가 51세때 운남에서 발에 이상이 와서 더 이상 걷지 못 하게 되었다.
얼마전 운남의 곤명과 리장에서 서하객의 동상과 기념관을 봤는데, 여기 북쪽 산서의 끝에서 다시 그의 글씨를 본다.
<북악 항산>
오악 중 북악인 항산은 높이가 2000미터가 넘는데, 삼각형 모습의 단조로운 산이었다.
윗쪽의 2주차장에서부터 오르면 2~3시간이내에 오른다.
다퉁의 남쪽 가까이 있고 도교사원들이 있으며 북쪽은 넓은 분지가 있었다.
그동안 오악 중 동,서,북,중악을 올랐는데 태산의 한국 길과 화산은 뚜렷이 기억에 남고, 중악 숭산은 달마스님 토굴을 못 본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굳이 못 가본 남악 형산 산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동안 가본 중국 산을 꼽아보니 22개를 구경했는데, 역시 서하객의 말에 일부 공감이 간다.
'五岳歸來 不看山 黃山歸來 不看岳'
오악을 보고오면 다른 산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황산을 보고오면 오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도 뒷 문장에는 동의한다.

바람이 많이 불어 케이블카 운행이 정지되어 이 주차장 위 2주차장까지 다시 차로 이동후 산행을 시작하였다




도교와 관련된 산이다.
도교 사원이 많고, 삼보일배로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온 이 사람들은 곧 이 전각의 도교 신께 제를 올리려고 한다.
중국은 한나라 이후 국가는 충효를 강조하는 체제 순응적인 유교를 내세웠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불교 숭앙의 기간도 있었지만 주로 현세 구복과 부, 영생을 추구하는 도교를 숭앙해왔다



건너편 산에 다른 사원이 보인다


5~60도 급격한 경사 계단. 끝부분에서 모두 기어 오른다

북악 항산 정상

북쪽의 분지





항산의 도교 사원들

항산 백송
<백석산>
태항산맥의 북동쪽 하북성에 위치해 있다. 산의 모습은 장가계처럼 기묘하다.
코스는 정상을 오르는 코스, 허리길을 걷는 코스, 밑부분을 걷는 코스가 있는데 밑부분 코스가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한다.
밑부분 코스는 폐쇄되어 나머지 두 코스를 걸었다.
중국의 산은 화강암과 편마암 위주인 우리와 달리 석회암 위주이다.
석회암은 탄산칼슘이 주 성분인 퇴적암이며 비료나 시멘트 석재등의 원료이고, 비, 눈등에 풍화가 쉽다. 따라서 카르스트 지형, 석회암 동굴등이 발달한다.
즉 한국 산들과 달리 중국 산의 기묘하게 깍인 봉우리 모습들과 석굴을 조성하기 쉬운 이유이다.
반면에 화강암 바위는 단단하고 북한산 도봉산등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케이블카로 올라왔더니 영하 11도를 가리킨다





백석산 정상. 태항산맥의 머리.
바람 불고 추운 날씨라 사람들이 없다

강태공 바위. 낚시를 드리워 세월을 낚으며 주 문왕을 기다리고 있다


손오공과 현장법사 모습같다









백석산은 석회암의 퇴적층과 석회암의 변성암인 대리암(석)의 모습, 그리고 풍화작용을 잘 보여주는 구간들이 있었다.


익스트림 스포츠인가.
공중 잔도, 사다리, 줄 타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도화산>













자그만 키에 마른 몸매이시지만, 배낭을 앞뒤로 매고 40대부터 돈을 모으시면 전 세계 구석구석 다니시는 75세의 안 선생님.
인생은 참 다양하다..
오늘 혼자 한단쪽으로 가신다고. 동태항 가보고 싶은 곳이라 하니까 같이 가자는데 지금은 갑작스럽고 몸이 피곤 상태라..
언젠가 한단과 동태항을 가보고 싶다.
중국의 류보청, 등소평등의 대일항전과 국공내전에서의 승리외에도 무정과 윤세주, 김학철등의 조선의 젊은이들이 싸운 조선의용군 격전지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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