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

북한산 돌탑정원, 중흥사, 보우국사 비, 거북바위

초록숲12 2020. 2. 9. 12:40


숙종이 북한산성 만들고 처음 시찰할 때 걸었던 숙종의 길을 따라 걸었다.

동장대에 올라 서쪽이 가장 낮아 다시 내성을 하나 더 쌓도록 지시해서 만든 중성문

노적사 뒤로 보이는 노적봉

진국교. 노적사 앞 다리. 노적사의 옛 이름이 진국사였다. 저 진자는 누를 진이 아닌 鎭護라는 글자처럼 여기서는 보호할 鎭의 의미. 나라를 보호할 절이라는 의미

짧은 릿지 구간

염초봉, 장군봉, 춘향이 바위. 북장대능선. 노적봉 경치가 좋다

성호 이익, 정약용 약전 형제, 추사 김정희등이 놀다간 산영루.

전에 옆의 비석 거리의 공덕비에서 우연히 민영준(민영휘로 개명)이라는 매국노 비석을 발견, 오른쪽  길가 낮은 비석

중흥사. 조선 승군 총 지휘부인 팔도도총섭이 상주하던 사찰이자 북산산성 수비를 위한 13개 사찰 중 우두머리 사찰.

아울러 유교 선비들이 산으로 놀러오면서 가장 많이 머물러 괴롭히던 사찰. 기생과 악사를 대동해 가마 타고 와서 스님들에게 당시 인기였던 두부 요리외에 닭과 물고기 안주등을 요구해서 술판을 벌였던 곳. 스님들은 불도를 닦는 것보다 군사훈련과 부역에 시달렸다.

매월당 김시습은 이 절에서 공부하던 중에 세조가 정권을 찬탈한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읽던 책 모두를 불사르고 중이 되어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얼마후 사육신의 잘려 버려진 머리를 당시의 살벌한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하나씩 바랑에 넣어 한강 가에 묻어준다.

20세기 초 큰 홍수였던 1915년 홍수로 파괴되었다가 최근에 복원 중.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 한옥 지붕 중 하나인 맞배지붕의 전형적 모습

승려들의 훈련지

원증국사 비. 고려 말 최고로 추앙받던 보우국사의 비.

오늘날 태고종의 시조. 당시 최고의 석학이자 정치적 실력자인 목은 이색이 문장을 썼다

보우국사 부도탑

거북바위.

보우스님이 기도하시던 자리.

우리 민족은 산악신앙. 큰 돌, 거북바위와 같은 곳을 기도처 또는 숭앙의 대상으로 여겼다.

오늘 여기 같이 가신 분들은 마음 속으로 기원한 소망이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다

행궁이 보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외적의 침입에 저항할 산성을 짓고 산속에 왕의 궁전(행궁)을 지었다. 행궁 역시 최악의 홍수로 유명한 을축년 1925년 대홍수로 쓸려서 파괴되었다가 요즘 복원 중

동장대.

북한산성에는 3개의 장대,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를 만들었다. 주변이 잘 보이는 곳에 만든 장수의 지휘소.

숙종이 영조를 그리고 영조가 정조를 데리고 오른 기록이 있다

정월 대보름. 보름달을 기다렸다.

원효봉 위로 드디어 보름달이 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