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몇 달만에 그 분을 만났다.
겉으로 봐도 아주 조심스럽고 내성적인 듯한 태도의 키 크고 깡마른 체구이다.
서로 안지는 오래 되었고, 한참 후에 그 분의 아버지, 가족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간단한 언급을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 같이 몇 사람이 산길을 걷고 술을 하면서 긴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이 바뀌었고, 4.3을 밝은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오랜 싸움을 해온 우리들에 대한 신뢰 때문에 속 이야기가 가능했다.
그 분의 아버지는 일제때 고향 제주를 떠나 일본에서 노동자로 살았다.
당시 많은 제주 사람들은 일본으로 생계를 위해 이주해서 노동자로 살았다. 일본은 노동운동이 활발했는데, 제주 출신 중에는 뛰어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그 분의 아버지는 해방시기쯤 제주로 돌아왔다.
해방직후 한반도는 자주독립국가 수립이라는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당시 제주에는 외지, 주로 일본에서 약 3만의 인구가 들어왔고, 그 중에 지식인과 노동자들이 상당수였다.
제주는 지역 스스로 학교들을 세우며 교육활동도 활발해졌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그리고 제주는 타 지역보다 빠르게 건준, 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주 국가 수립 열풍이 강했다.
일부 일제시기 관료와 경찰을 제외하고 모든 제주 도민은 자주적 통일국가 건설이라는 동일한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분의 아버지는 귀향후 고향 면(지금은 읍 지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남로당 면 위원장이 되었다.
당연히 4.3 시기에 경찰측에 의해 가장 악질분자로 지목되고 시기도 정확히 모르는 어느 날 행방불명 후 처형됐고, 아주 훗날 제주비행장에서 발견된 유골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분의 나이 4살때라 아버지는 얼굴도 기억을 못 할 때였다.
어머니는 도피 중 잡혀 1950년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처형되었다.
그 분은 그후 외할머니 집에서 조금 살다가 사촌 큰 형집에 얹혀 살았는데,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욕을 엄청 들으며 지냈다.
매우 위축되고 괴롭고 우울한 고아의 생활이었다.
고교 대신에 초등교사가 되는 3년제 사범학교에 들어갔다.
1학년때 인생을 내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 진학과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촌형은 시골에서 서울대학에 입학했고 졸업후 교통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약 2년후 갑자기 짤렸다. 이유도 통보받지 못했다.
그후 평생 취직을 못 했다.
그 분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 분은 사범학교 졸업후 경남에서 2년 정도 초등교사를 하다 그만두었고, 여차하면 외국으로 나가 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외국의 카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서강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후 서울대 석사과정때 너무 괴로웠고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사의 길을 생각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원에서 사회 문제에 저항적인 의지가 강하고 진지한 고향 또래를 만났다.
그리고 1년 반만에 그 곳을 나왔고 계속 공부를 하였다.
그후 서울의 주요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근무하였고,
지금은 퇴직 후 10년간 매달린 플라톤 연구, '정의'에 관한 논문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
그 분은 오랫동안 자신의 호적관계의 변동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처형되고나서 사촌 큰 형의 아들로 누군가 변경했고, 그래서 아버지로 인한 피해는 그 형만 온전히 당한 것이었고, 그 분은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신영복선생은 말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일생에 담겨있는 시대의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비켜 간 삶을 정직한 삶이라고 할 수 없으며----
개인의 팔자는 민족의 팔자와 결코 무관 할 수 없습니다.----
식민지 조국과 유관순의 팔자, 위로는 그룹 총수의 팔자에서부터 아래로는 이름없는 노동자와 창녀촌의 영자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팔자 속에는 어김없이 민족의 팔자가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개인의 팔자는 민족의 팔자와 결코 무관 할 수 없습니다"라는 구절.
현재 44년생 82세인 이 분의 온 생애, 그 분 아버지와 어머니의 온 생애에 우리 민족의 팔자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그 분은 본인의 인생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동안의 조심스럽고 위축된 삶을 생각하면 먹먹하고 눈물이 인다고 눈가를 손으로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