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지인과 함께 성북동 일대를 돌아보고 이번에 새로 개방한 북악산 남측면 등산을 나섰다.
혜화동 노타리에서 출발하여 하산 길은 오랫만에 백사실계곡을 구경하는 코스를 잡았다.


장면 가옥. 서양식 사랑채와 한옥 안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통 일당이 청와대에 보고한다는 명분으로 찾아오자 윤보선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군' 하면서 쿠데타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안했다.
총리인 장면은 어딘가로 꽁꽁 숨어서 몇일간 찾을 수 없었다.
수도원에 꼭꼭 숨어버린 것이다.
결국 둘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책임감 없는 두 최고 정치 지도자의 민낯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무능한 지도자들의 민낯도 봤다.
다시 앞으로의 모습도 걱정된다. 준비되지 않은 실력없는 지도자..

지나가다가 만난 혜화초등학교.
과거 백정들의 한이 서린 배움터.
과거 명문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전국 최상위권을 기록했던 곳이다.
이런 성적은 아마도 과거에 이 지역의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지역은 조선때부터 일제때까지 팔천민 중의 하나인 백정들의 거주 지역이었다.
바로 옆의 성균관을 반궁(泮宮)이라 불렀고 주변 마을을 반촌(泮村), 주민들을 반인(泮人)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문묘와 성균관의 관리 및 식사등 온갖 잡다한 일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당시 소는 농사의 중시 때문에 도축이 엄격히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문묘의 제 의식과 성균관 유생들의 식사로 소고기를 제공하고 재원으로 사용하면서 이들에게만 도살업과 판매권이 허용되었고, 가죽으로 신발등을 만드는 갖바치 일을 하였다.
이들은 복장부터 다르게 구분되었고 엄청난 천대를 당해서 자식들은 배워서 설움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1910년에 숭정학교를 세워 지원을 아끼지 않고 반촌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이 학교가 공립 혜화초등학교로 변한 이후에도 그들의 뜨거운 교육열이 이런 성적을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조선때 반촌은 사람들이 거칠어 외부인들이 들어가기 어려운 거의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그래서 범죄인들이 숨어 들기도 하였고, 정약용등이 이 곳에서 몰래 성경공부를 하다가 들킨 일도 있었다

증주벽립
송시열 집터에 새겨있다. 송시열 글씨라고 한다.
증자, 주자를 본 받는 자세로 살아가겠다는 뜻?
조선을 말아잡순 당쟁에서 서인 노론의 영수. 여러 왕의 시대에 걸쳐 파당을 일으킨 인간.
이 사람이 살아서 한때 이곳은 송동이라고까지 불렸고 바로 옆 성균관 문묘에 동방 18현으로 모셔져 제삿밥을 먹고 있다

우연히 지나다 발견한 기념비.
이곳이 당시 불교계 신식 학교인 중앙학림 터라는 것을 알았다.
한용운스님의 제자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우리 말 학자인 김법린스님도 이 학교 출신이다.
한용운스님과 중앙학림 학생들은 3.1운동 직전 대의를 논의하고 스님께서 이 젊은 학승들에게 유인물을 전달하고 배포를 맡겼다

이성계의 즉위 전 사가 터이자 조선 교종의 중심 사찰인 흥국사 터.
어른 어린애 누구든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하마비



우연히 만난 사설 도서관.
대문을 들어가자 입구와 넓은 정원이 예쁜 이층 양옥의 도서관.
뜻있는 분이 본인 살림집 공간을 줄이고 사설 도서관을 운영 중.
주인 아주머님이자 관장님의 인상도 좋았다.
이 동네 산다면 여기서 책 보고 뒹굴거리겠는데..

최순우 가옥
미술사학자이자 과거 중앙박물관장이었던 최순우 가옥.
의미있는 공간이 팔리고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1호로 십시일반 시민들의 모금으로 살린 집.

두문즉시심산
너무 멋진 말이다. 종종 그 의미를 떠올리며 생각할 것 같다

모란


뒷마당. 대나무와 자목련
목련꽃 그늘 아래서는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어야는데...

소나무, 동자석, 그리고 빨간 꽃이 달린 나무는 이름이 특이한 명자나무라고 한다

부근에 조지훈 집이 사라져서 기념하는 공간.
신간회 운동과 제헌의원이었던 납북된 아버지가 찾아 오시도록 이사도 안가고 사셨는데, 멋진 베레모를 쓰시고 기품있게 지나다니셨던 동네.
'승무', 청록집등의 시인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일제와 해방후 늘 지조를 지킨 학자이자 어른이었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비판적이면서 '지조론'이라는 책도 썼다

선잠단지. 여기서 하늘에 제를 지내기도 했다

한양도성 바로 밑까지 집들이 빼곡한 모습

구립 미술관.
예술가들이 많이 살던 동네답다.
과거 이 동네는 산과 물이 흐르는 골짜기였고 복사꽃등 꽃이 많았고 호박밭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후 수많은 문인, 그리고 윤이상등의 예술가들이 살았고, 서로 교류도 하였다.
예전에는 삼청각과 지금은 사찰 길상사로 변한 대원각등의 대형 요정이 있었고,
지금은 간송박물관, 수연산방, 성락원, 운보 김기창미술관(현재는 미개방), 한국가구박물관, 옛돌박물관등과 그리고 수많은 대사관저가 모여 있다.

마포에서 젓갈 장사로 큰 돈을 번 이종석이라는 사람이 지었다는 별장.
문인들 여럿이 종종 모이던 장소였다고 한다. 누마루가 인상적이다

심우장 입구
한용운스님 집답다. 산간 불교, 승려 중심의 불교가 아닌 대중 불교, 대승불교를 주창하셨는데, 산 꼭대기 다 쓰러져 가는 집들이 있는 북정골이라는 달동네에 조선총독부 방향으로는 보기도 싫다고 북향으로 만들었다.
거처가 없는 스님께 주변 사람들이 마련해준 집.
대학시절 읽었던 김우창선생의 한용운스님에 관한 평론 글의 일부가 갑자기 기억났고, 한용운스님의 제자로 옥바라지를 하셨던 망월사의 선승으로 이불 깔고 눕지 않았던 욕쟁이 춘성스님도 떠올랐다.
앞으로는 가끔 이 곳과 최순우 가옥에서 뒹굴거리다 미술관도 들려야겠다



해방을 못 보시고 직전인 1944년에 이 집에서 돌아가셨다. 스님이 심으신 향나무는 스님의 기품처럼 꽂꽂하게 서있다



산과 도성으로 둘러쌓인 달농네, 북정골.
이재민, 피난민들의 무허가촌으로 상당 기간 천막집 형태를 유지.
동네가 형성된 이후 수십년간 전기와 수도가 안들어 왔었다고.
그리고 성북동은 언덕위의 이 판잣집들 건너편은 호화주택 동네. 극과 극의 사람들이 존재.
성북동 사람들은 호화주택 동네를 도둑놈들이 사는 곳이라고 도둑촌이라 불렀다


숙정문
한양도성의 북문. 늘 닫아 두었다. 五常의 글자를 따라 동서남대문의 이름을 지었는데 북문은 智 글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북쪽은 음기가 많아 이 문을 열어두면 한양이 습해지고 여자들이 바람을 많이 핀다고.
가뭄이 들면 이 문을 열고 火기가 많은 남대문을 닫았다

새로 개방한 북악 남측면을 내려가다가 만난 법흥사 터


만세동방 약수터


백사실 계곡 상부




백사 이항복 별장 터.
후에 이 지역을 추사 김정희가 소유했다고.
두 분 모두 유배 다니기도 바빴는데 이 곳의 경치를 많이 즐기지도 못 했을 듯


세검정 정자
인조반정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다. 광해군의 적절한 균형 외교가 사라지면서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해악만 끼쳤다.
지정학적 고려없이 명에 대한 일방적 사대주의로 청의 침략을 초래해 부녀자, 아이들을 포함한 50만명이 끌려가 커다란 고생을 하였고, 국토는 철저히 유린당해 이후 민중들의 삶은 오랫동안 어려웠다.
그리고 황당한 소 중화주의가 등장해 우스운 철학 논쟁인 湖落논쟁도 벌리고, 세계사적으로는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당쟁으로 허송 세월 시간만 보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있는 彰義門 명칭도 사용하지 말고 해질녘 자줏빛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예쁜 이름인 紫霞門, 북소문으로만 불렸으면 좋겠다.
오른쪽에는 연산군이 미희들과 놀던 탕춘대 누각이 있었고, 후에 영조는 이 동네에 군사훈련을 위한 연융대를 만들었다.
비 오는 날의 이 지역은 폭포도 있고 풍경이 좋아 정약용이 주도해서 급작스럽게 여럿이 노비들을 대동하고 종종 이 곳에 모여 놀았던 모습을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글에는 비 내리는 와중에 한쪽 구석에서 그들의 술 안주로 고기를 굽는 노비들 이야기도 적혀 있다.
고려와 조선은 자기 나라 민중들의 고혈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신분제 국가였다. 원나라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왕조들이 범죄자나 전쟁포로가 아닌 자 민족 사람들을 노비로 이용한다고 비난하건말건 상관없이..
정약용은 그 신분제 사회가 온전하길 주장한 사람이었다. 목민심서에 그런 구절이 있다.
그래서 이이,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등이 위대한 인물이다.

탕춘대 능선 밑의 홍지문.
저 문의 뒤쪽으로 가면 옥천암과 마애불이 있다. 그 곳에서 대원군 부인이 고종을 위해 종종 기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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