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에 두번 가보고 오랫만에 찾아간 베트남.
20년이면 강산이 두번은 바뀌었을 시간인데 중국처럼 거대한 변화는 없었다. 발전의 속도가 중국보다는 느렸다는.
그러나 몇년전부터 7-8%대의 고속 성장을 하고 있어서 앞으로 10년후에는 더 많이 달라질 듯.
세계적으로 드물게 오랫동안 외침과 피지배, 저항의 역사를 가진 나라.
한국인처럼 똘똘한 눈망울과 빠릿빠릿함. 게다가 나라 인구가 젊은이들이 주축이어서 밝은 희망이 있는 나라.
오랜 피지배와 저항의 역사를 거치면서 몸에 밴 애국심과 저항 정신, 그리고 미국과 싸워 이긴 세계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이 충만한 나라.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 위치임에도, 쿠데타로 집권해서 정통성이 결여된 취약함을 가진 박통 정권이 미국에 잘 보이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미국을 따라 침공해서 우리와 상관도 없는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 방화하고, 강간했던..
그리고 현재는 베트남 투자 1위 국가인 한국.
하노이 공항
부촌인지 20여년전과는 엄청난 차이가
관광지 하롱베이의 밤 거리
하롱베이 지역 시장
오랜 저항의 역사 때문일까 국기를 늘 달고 있다는 집들이 참 많이 보였다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한 무제의 침공과 한 9군의 설치이래 오랫동안 중국의 침입과 지배에 시달려 왔다.
쯩자매때의 잠깐 동안의 독립이나 지속적인 독립운동도 있었지만, 10세기까지 약 1000년간 중국의 지배와 통제를 받았다.
당 태종의 침공이후 오대십국 시대와 송대에 독립을 했으나 다시 원의 침공, 명 영락제의 침공, 청 강희제의 침공등 수많은 침략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시 1800년대 들어서면서 프랑스의 식민국가가 되었다.
2차대전 시기에는 잠시 일본의 지배에 놓였다가 1945년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베트남인들은 독립을 선언했으나 연합국은 베트남을 영국과 중국의 관할하에 두는 결정을 했고, 프랑스의 재 개입과 설득으로 양국은 군대를 철수하였다.
이후 프랑스는 계속 베트남에서의 식민지배를 이어갈려고 했으나 베트남인들(베트남 독립동맹 또는 비엣민, 베트민, 월맹)의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쳐서 지속적으로 싸움, 즉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이어지다가 1954년 유명한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결정적인 대패를 하여 제네바협약을 맺고 프랑스는 떠나고, 북위 17도선을 기준으로 임시로 북은 호치민이 지도하는 북베트남, 남은 옛 바오다이 황제의 베트남으로 분단되면서 56년에 전체 통일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남쪽은 총리인 고 딘 디엠이 부정 투표을 통해 황제를 축출하고 대통령이 되고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분단은 고착화되었고, 1964년 미국에 의해서 조작된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미국은 북 베트남에 대대적인 폭격을 퍼부으면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시작되었다.
남 베트남 정권의 지독한 부패, 승려와 불교도들에 대한 탄압과 분신등이 이어지고 남쪽지역에서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의 불굴의 저항과 그리고 북 베트남과의 싸움으로 끝 모를 전쟁의 수렁에 빠진 미국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미국은1973년 북 베트남과 파리협정을 통해 휴전과 철군을 결정했고, 이후 1975년 베트남은 긴 독립전쟁의 역사를 거쳐 비로서 독립과 통일을 획득했다.
농촌지역도 이렇게 집들이 좋은
검소하고 국가와 결혼했다는 독신의 호 아저씨 침실
지도자 호지명의 서재,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진 그리고 레닌의 흉상
하노이 중심지. 최고급 주택지역
하노이 중심지에 있는 호숫가의 밤. 중국처럼 밖에서 집단적으로 군무를 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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