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

삼청산, 황산, 서해대협곡 - 1. 강남지역.

초록숲12 2016. 5. 28. 15:25

 

  중국 산 경치를 대표한다는 황산. 그리고 삼청산.

이번 산행으로 중국 산은 10개째인데, 그동안 친구들과의 산행 약속이 몇년동안 번번이 좌절되면서 늦게 가게 된 산.

삼청산은 산위로 오르면서 가느다란 비와 구름으로 원거리 경치는 잘 안보였고,

황산은 멋진 장관을 봤으나 점심식사후 오후 서해대협곡이 운해에 쌓여 있어서 아쉬웠던.

1년 중 하늘이 열리는 날이 정말 드물다는데..

  하지만 멋진 풍광들을 드문드문 봤고, 나의 국내 산행이나 해외 산행에 대한 평소 생각으로는 위안이..

생각을 집중할 일도 많은데, 산행은 건강을 위해 할 뿐. 암벽타기처럼 산 자체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는.

그리고 해외 산행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을 간다는.

그래서 전문 산악인도 아닌데 줄기차게 걷기만 하는 에베레스트나 킬리만자로 트레킹등은 나의 관심밖.

 

  그동안 인상 깊었던 산은 중국 공산당의 전사들만이 아니라 조선의 수천 젊은이들도 함께 일본에 대항해 싸운 격전지이자 전한과 후한 사이의 왕망과 광무제의 싸움터였던 태항산맥.

하북과 산서, 하남의 경계이자 그랜드캐년 3배 규모라는 남북 600키로, 동서 250키로의 웅대한 스펙타클. 내게는 미국 그랜드캐년이나 호주 블루마운틴보다 더 멋졌던.

  

  그리고 노년기지형의 작고 동그란 우리 산들의 모습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중국 산들 특히 장가계를 보면서 내내 든 생각.

조선 숙종, 영조이후 대두된 정선, 김홍도, 신윤복등으로 이어진 진경산수화의 의미, 그리고 조선 유학자 관료들이 역사에서 이 나라 민중에게 끼친 지독한 폐해.

 한 마디로 말하면, 노신의 소설 아큐정전에서의 주인공 아큐가 한쪽에서 당하고 자기 변명하듯이, 병자호란이후 병적인 소중화주의의 등장과 함께 오랑캐(청)도 사람이냐는 썩어빠진 조선의 유학자 관료들의 정말 황당한 호락논쟁이라는 사단칠정론에 이은 조선의 두번째 철학논쟁이 대두할 때 같이 등장한 진경산수화의 주체성(?)도 장가계의 산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이.

 

    그러나 이 땅의 사람이어서인지 특히 내게는 두번 간 백두산이 인상적이었던.

90년대 중반 중국 코스는 유일하게 장백호텔 한개 있고 개발도 안되서 자연스러웠고, 장백폭포의 호쾌한 모습도 좋았지만, 중국 코스는 장백폭포까지 접근해야 산 모습이 보이는데 반해, 남북 평화적 무드의 노무현정권 초기 어떤 회의 행사단에 끼어서 가게 된 북한쪽 코스의 웅대한 스케일.

 마그마가 녹으면서 흘러내린 거대한 용암 흔적, 노란 이깔나무 숲 물결이 온 천지를 물 들인 삼지연 일대, 자작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삼지연 공항, 평양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낮은 비행으로 뚜렷하게 조망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개마고원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백두고원의 장관까지.

 

  이번 산행 일정은 상해 푸동공항을 거쳐 절강성, 항주, 안휘성, 그리고 처음 가보는 강서성등에 걸쳐 있어서 장시간 버스를 타야 했지만, 중국이야 가볍게 타도 3시간이상은 기본이고 조금 탄다하면 6-7시간이니 버스 장시간 타는 것을 궁시렁 거리는 사람은 중국 여행 자격이 없고, 산 가까이 비행장으로 접근하면 산하의 모습을 못보는 아쉬움이.

 

 이 3개성 지역은 춘추시대나 전국시대에 오, 월, 그리고 초의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데, 과거 중원 사람들의 자기 중심적인웃기는 분류에 의하면 남만(우리를 동이라고 불렀던 오만함)에 해당 된다고 할.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와 특히 진, 한의 통일이후 정치사의 주요 구성원으로 포함된 지역.

 

 

 

 

    

 

    황산시 부근의 명나라 풍 골목 거리.

 

  절강성은 오랫만에 다시 가보는 곳이었는데 중국의 발전 속도를 정말 절감했다. 과거 누추한 시골의 풍경은 완전히 사라졌고 상전벽해, 천지개벽이라는 단어가 딱 적당한 단어일 정도로 발전.

지나는 농촌의 집들은 명나라 풍인지 청나라 풍인지 모르는 독특한 지붕 모양의 삼사층 주택들로.

항주 일대는 일찌기 오, 동진을 포함한 육조시대부터 강남의 중심지역으로 발전해 있었던 곳이고, 남조의 네 나라와 남송, 주원장의 명 초기에도 번성했던 특유의 문화를 갖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3대 군주 중 하나라고 여기는 (그들의 분류는 기준이 정치를 잘 한 것이 아니라 땅 덩이를 많이 차지한 강한 군주라는 황당함) 명 영락제때부터 주로 진출해 오늘날 동남아 상권을 장악한 화교들 중 대표적인 객가인들의 주요 출신지역이 절강인들이라는 사실에서 보듯 절강인들의 뛰어난 근면성과 상술이 떠오른다.

 

   안휘성은 못사는 지역이라고 들었는데, 이 지역 역시 중국의 빠른 성장과 함께 엄청 발전한 지방 풍경. 오랜 기간동안 년 10%대의 고성장의 결과가 이런 발전을 초래했구나 싶은.

절강성의 평야지대와 달리 안휘성은 산악지형이라는 점과 과거 중국사에서 싸움터, 전선 지역이라는 점이 발전에 장애가 되었었는데.. 오월시절 지속적인 싸움, 삼국시대, 특히 남북조 시대와 남송시절 전쟁터이자 전선지역. 

고도 성장은 지방, 농촌까지 골고루 발전시켰고, 그들의 거침없는 횡보는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하고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할 지..

 

   중국의 23개 성 중 한개 성 크기보다도 적은 우리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국민총생산이 큐우슈우 정도밖에 안되는 우리.

최근 성장이 절벽에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대외 경제 상황에 따라 좌우로  쓰러지고 휘둘리는 우리는 내수경제가 없고 오직 수출위주 경제구조여서 더욱 문제인데, 거대한 중국의 내수 시장 규모, 일본의 탄탄한 내수 경제를 떠올리면 앞날이 캄캄..

박정희정권의 오랜 장기 집권에서 부터 잘못 시작된 경제 정책의 결과이자 균형적 분배정책과 복지정책이 내수 경제력의 기반인데 이에 대한 지배권력의 몰 이해와 일부 재벌과 집단의 그들만의 부의 과도한 독점에서 비롯되었다.

 

  강서성은 삼청산을 가면서 이번에 처음 가본 지역.

거대한 포양호가 있고, 중국 역사에서는 눈에 띠는 특징이 없는 곳인데, 현대에 들어 중국 공산당의 혁명 요람이 된 지역. 

  중국 공산당이 남창폭동, 호남 강서 추수폭동, 광주폭동이후 국민당 군에 쫓겨서 들어간 천혜의 요새이자 대장정이 시작된 곳이며 홍군이 창설된

정강산과 서금이 있는 지역이라는 특징.

 

                               삼청산

 

 

경치가 빼어난 곳마다 보이는 도교의 흔적(삼청이라는 명칭)과 사원들.

우리의 문화로는 이해가 잘 안된다. 

 

 

 

 

 

 

 

 

 

 

 

 

 

 

 

 

 

 

 

  과거 잔인한 진시왕과 독재자 한무제가 봉선의식을 거행하려고 태산을 오를 때 저렇게 올랐을 듯.

그런데 지금 왕조시대, 봉건시대도 아니고 이건 정말 황당한 모습.

자기 발로 오르지 않으면서 산 구경이라니. 저 뻔뻔함.

그런데 저 힘들게 어깨에 맨 사람들은 받은 돈을 모두 갖는 것이 아니라 사장에게 일단 바친다.

명목은 사장만이 인명 사고때 지출되는 막대한 비용에 대처할 수 있다고..

자본주의의 잔혹한 일면을 보는 듯하다.